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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조ing 보통 한녀 #비혼여성의_삶

사적인 이야기

by 김이김 2021. 10. 16.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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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어느 카테고리에 쓸지 고민하다가 어쨌든 현재 나는 보통의 비혼 한녀이기 때문에 오늘 얘기로 써본다. 나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외국에 연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외부의 서포트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탈조는 온전히 내 의지였기 때문이다.

<나의 탈조 원동력>

  1. 모태신앙 기독교 장녀
  2. 같은 교육 받고 살았는데 성별에 따라 다른 사회적 기대
  3. 내가 원하는 사람과 제도적으로 묶을 수 없는 것
  4. 가장 작은 사회로 여겨지는 가족 중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 없음

  베이비 부머 세대의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이 내 부모도 아이(나) 인생을 생각해서 나를 낳은 게 아니다. 살다 보니 결혼하고 애 낳고 키우고 얼레벌레 뚝딱이며 삶을 살아낸다. 그런데 태어난 나에게 이 세상은 앞뒤가 안 맞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왜?라는 물음을 '순종적'이지 않다며 원천 봉쇄했고, '원래' 그렇다며 이해를 강요했다. 성경은 남자들의 시선으로 쓰였다. 아이가 아이답게 실패하고 헤맬 틈이 없다. 여자의 시각에서도? 뭐 딱히..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느낌이 없다.

  나는 이것을 아주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여자', '아이'로서 내가 이해해야 할 몫이 너무너무 많았다. 집중력이 당연히 없을 시기에 정해진 시간 동안 뛰면 안되고, 말하면 안되고, 움직임이 커도 안됐다. 예배시간은 원래 그렇다고 했다. 왜? 언제부터? 누가 그랬어? 하나님은 왜 그랬어? 왜 그렇게 믿는거야?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답변을 가질 수 없었다. 원래 그렇다고 한다. 그걸 내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신은 인간을 시험하기 위해 고통을 준다는데, 마귀의 술수와 유혹에 넘어가면 안된다는데 그러면 유년기 시절에 내가 모르는 남자에게 강간당하고, 그게 내 잘못일까봐 부모한테 말 못 하고 혼자 참은것도 신이 나에게 준 시험과 선물인가? 내가 그 어린 나이에 말못하고 참았던 건 동생을 돌보며 뭔가가 다치면 내가 혼났기 때문이다. 그런 나쁜 일이 생긴 것도 내 잘못인 줄 알았다. 혼날까봐 말 못했다. 성인 남자가 10세 미만 아이들과 삽입 강간하는 게 어떤 건지 몸으로 느낀 내가 10대가 되어 그게 무슨 일인지 알게 됐을 때의 혼란은 어땠을까? 

  방황했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부모는 열심히 사느라 매일 바빴고, 그 와중에 문제없이 자라나는 것이 나의 몫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아팠다. 슬프고 우울했다. 뭔가가 고장 난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도 몰랐다. 내가 하는 생각, 말, 취향 그 모든 것이 통째로 흔들렸다. 인정 욕구와 애정결핍에 시달리며 대인기피가 생겼는데 엄마에게는 갑자기 얘가 이상해진 거였다. 대중교통에서 누가 내 옆에 앉으면 조금이라도 닿는 게 싫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는 그런 나를 몰랐다. 특이하고 유별나니 평범해지려 노력하라고 했다. 상관없었다. '원래' 엄마가 나를 이해하는 영역은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였던 나는 엄마의 선택과 감정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내가 문제라면 나를 고쳐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부모들은 아이의 예전 모습을 기억한다. 컨트롤이 가능한 영역에서 재롱부리며 순수했던 그 시절을 회상한다. 나는 현실을 살아간다. 나의 지나간 인생 그 어느 부분을 그리워하듯 그들도 그럴 뿐이다. 그 시절을 지나온 현실의 나는 그들의 판타지 같은 예전의 나로 그들의 욕망에 맞출 수 없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없다.

  평범하고 싶었다. 시키는 대로 종교를 믿을 수 있다면 나는 집안의 구성원으로서 모난 돌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지나간 상처들을 아무것도 아닌 걸로 만들고 싶었다.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듯 내 몸을 혐오했다. 그런 더러운 일이 일어난 장소인 스스로를 파괴하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포기하게 된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어라. 불특정 다수의 남자랑 성관계를 맺어본다. 불법 촬영을 하든 말든, 성병이든 뭐든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이 좆같은 세상에서 나 하나 사라지면 그만인데. 더 살고 싶은 미련도 없는 삶 어디까지 추락하든 나는 모르겠다. 

  사람이 배우고, 변화하고, 성장하려면 물리적 상황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밖으로 나오고 싶었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이 처참한 한국에서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나는 한국에서는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고 4대 보험이 보장된 곳에서 근무하며 4인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메이저리티로 살 수 있다. 밖에서는 몇십 년을 죽을 때까지 살아도 영원한 이방인이다. 그래도 좋더라. 캐나다 온 지 1년 차에 느꼈다.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벨트가 나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눌러앉게 된 것이다. 다 가질 순 없지만 적어도 내가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나의 생존권이었다.  

  난 더 이상 상처를 끌어안고 과거에 매여 살지도 않고, 상처를 외면하지도 않는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런 유연성과 단단함은 오로지 나의 것이고, 어떤 것도 건드리게 두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삶과 잣대에 나를 맞추기를 그만두고 나서야.. 그 틀을 벗어나고 나서야 자유를 느꼈다. 삶의 방식과 다양성은 무한하다. 이제는 내가 있는 줄도 몰랐던 세상을 볼 때 오르가즘을 느낀다. 예전의 내가 절절맸던 타인의 애정, 물질적 소유, 호르몬 자극들의 통제권을 지금의 내가 가지고 있다. 다른 한녀들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내 세계를 구성하는 것들을 분석하고, 내가 얼마나 나약한지 파악하고, 단단해 지기 위한 초석을 다듬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것은 나 자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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