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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지향성/정체성은 언제 깨달았나요?

사적인 이야기/나의 1020 스토리

by 김이김 2021. 10. 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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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자면 30대 기혼 레즈비언이지만, 지금 이 글을 읽을 독자들과의 라포(관계) 형성을 위한 첫 번째 질문이 뭘까.. 생각해보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이 질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레즈비언을 처음 만난 때는 초등학교 5학년때였다. 당시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사촌언니들이 H.O.T. 를 좋아했기 때문에 나도 자연스레 그 문화에 빠져들었다. 당시 전학을 간 학교에서 힘들게 적응하고 있었기에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친구들을 만난 것이 굉장히 반가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우연의 연속이다.) 해당 학년에서 그 아이돌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나 이외에 단 2명뿐이었다. 그 팬덤에서는 내 나이가 굉장히 어린 축이었기 때문에 우린 해체 기사를 지면으로 접한 날 화장실에서 손잡고 복도가 떠나가라 엉엉 울었다. 우리 셋은 똘똘 뭉쳐서 그 이후에도 덕질을 했고 그중 한 명이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를 여자친구라며 소개해줬다. 나는 이성애/동성애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무했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정말.. 그렇게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그 친구에게 왜?라는 질문도.. 아니 그냥 전반적으로 별 생각이 없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대중교통을 타는것이 자연스러워진 우리는 오프라인 정모를 자주 참석했다. 실제 아이돌 공연이나 행사를 다니기도 했다. 그 팬덤에서 만난 언니들에 대한 얘기도 참 많고 길지만 오늘은 이 글을 완주하기 위해 생략한다. 나에게 처음 본인의 여자친구를 소개해줬던 그 친구는 여자에 대한 관심이............. 아주.. 아주 많았다... 당시는 엔티카(2000년에 오픈한 커뮤니티 서비스)가 살아있었던 시절이었기에 이쪽 커뮤와 엔티카를 열심히 이용하며 레즈비언들을 계속 마주쳤다. 그렇게 바깥 세상을 만나 신기해하던 중학생은 인생을 바꾼 새 문화 '팬 코스'를 접하게 된다. 문화 자체가 어떠했다기보다 거기서 날 레즈로 만들어버린 내 인생의 일대일로 같은 여성을 만났기 때문이다. 두둥.. 

(짤이 남아버린 you빈씨..항상 행복하시길..)

 

당시의 나는.. 애정결핍에 목말랐고, 인정욕구에 영혼이라도 팔고 싶었고 마침내 날 사랑해주는 그 사람에게 내 모든 걸 쏟아냈다. 그 사람은 나를 머리부터 발 끝까지 바꿔놨지만 나는 그를 너무 사랑했던 나머지 보내줄 때를 놓쳐 아주 구질구질한 몇 년을 보내게 된다.. 시간을 돌리고 싶지 않지만 돌릴 수 있다면 이 때로 돌아가고 싶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좋은 인생친구나 동반자가 될 수 있었는데.. 나는 걔를 너무너무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지난한 집착일 뿐이었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났을 시기에 나는 완전한 이성애자였고 연애 상대도 있었다. 그래서 난 그 관계가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그런.. 무엇인 줄 알았다. 그 중간의 무엇임을 고민하는 게 약 2년이었고, 동갑이었던 우리는 대망의 고3을 맞았다. 난 이미 그 사람을 보면 물고 빨고ㅎ...... 고 싶어 미치겠는데 걔는 자꾸 나를.. 받아주면서도 밀어냈다. 삐뚤어진 애정과 관계 집착의 당연한 결과지만 첫사랑에 장렬히 실패하고 또 방황을 하게 된다.. 실제로 나는 이 여성을 10년 동안 못 놔줬다. 아직도 그 시절의 블로그는 이런 식이다.. 나의 흑역사 무덤인 엔티카, 버디버디, 프리챌, 싸이월드가 망해서 다행이다 adios..!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쫌 제발 쫌 

 

 

결론은 내가 여자한테 성욕을 느끼며 몸이 반응할때 깨달았다. 잔혹하게 유성애적인 접근이지만 그때는 몰랐다.. 성애의 스펙트럼.. 그런 정체성 찾기의 개념들이 비옥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답변 완료!  다음 질문은 뭘로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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